남들이 소통에 대해 말하면 나는 일단 거부감부터 든다.
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듣고 나서야 소통했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.
그건 그냥 연기일 뿐이지 않나?
상대방에게 칭찬을 받고 싶을 때 나에게 이렇게 칭찬을 해줘서 그 상대방이 그대로 해준다면 그것은 진심이 아니다.
그가 화가 났거나 혹은 낯선 사람이라면 몰라도 대부분의 사람은 그 정도의 친절은 베풀 것이다.
그냥 말을 건네는게 소통일 뿐이라면 나는 엄청난 소통왕이다. 별 의미없는 소리도 굉장히 많이 하니까.
소통은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것. 어떻게 보면 까다로운 조건이지만 결국 본질은 이것이다.
소통의 욕구라는 것은 정말 귀찮다. 사람은 왜 타인의 신호에 따라 자기가 반응하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지 아직도 알 수 없을 뿐이다.
본능에 가까운 인간의 기본 욕구 중에서 유독 성욕만이 타인을 필요로 한다. 혼자 해결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결국 타인을 필요로 한다. 그 타인을 필요로 하게 되면 또 다른 타인이 생기고 그 타인이 타인을 만나서 역사를 일궈낸다. 참 피곤한 시스템이다.
어제 나에 대해 잘 안다고 말하는 소릴 들었다. 대화를 한 지는 3~4년 정도 되어가지만 잘 안다고? 무엇을?
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렇게 많이 설명해도 기억을 못하는데 뭘 안다는 건지 모르겠네.
무심코 나는 내가 어떤 말에 어떤 반응을 하는지 모르지 않을텐데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따졌다. 잘 안다는 말 말고 나보고 말을 거칠게 하지 말라는 명령에. 나는 말을 거칠게 하지 않았는데도 왜 그런 소릴 들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고 어쨌든 참 거슬린 오발탄을 여러 번 맞은 셈이 된 것 같다.
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잘 아는 건 아닌가 보다. 나는 다른 사람에 대해 별로 알고 싶어하지 않으면서도 참 많이도 안다.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반응하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.
역설적인 세상이다.
나를 애인이라고 떠벌리고 다니는 환자와 함께 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.
단 1년 동안 같이 있었는데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도 좋아한다는 말도 없었고 내 의사를 물어보는 일도 없었다.
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도 모를 것이다.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으니까. 대화도 별로 한 기억이 없는 것 같다.
대부분 남 얘기만 들었던 것 같다.
그런 관계가 애인이라니 말이 되기나 하냐.
중경삼림을 극장에서 처음 봤다. 어릴 땐 들어보기만 해서 지루한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보니까 비교적 단순한 내용이다. 상징은 해석을 봐야 알 수 있긴 하지만 전체적인 스토리는 그렇게 복잡하진 않다. 인스타 감성 물씬 묻어나오는 그 영화는 마치 섹스없는 야동 같았다. (수위가 좀 있지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만 조블랙의 사랑보단 낮은 편임)영화가 전체적으로 성감대를 건드리는 티를 확 풍겼다. 그러면서 이건 영화라는 걸 계속 각인시켜야 했다. 실제로 저런 낭만적인 연인관계는 없다.
집열쇠를 건네주면서 연인관계가 끝났다는 걸 암시하는 장면이 나올 땐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하다고 느꼈다.
보통 집 열쇠를 건네주면서 연인이라는 걸 표시하니까.
대낮에 내가 빈 집에 찾아가면 가끔 할 짓이 없어서 어지럽혀진 원룸을 청소해줬다.
상자 하나를 준비해서 거기다 물건을 전부 집어넣는 짓을 하는데 두 사람 다 그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다.
그 땐 아무 생각 없었는데 지금은 그게 나를 이방인이라고 선을 긋는 의미였나 보다.
그래서 헤어질 때도 아프진 않았다. 단지 주말에 뭘 하고 놀지 심심했을 뿐.
다시 1년 뒤에 그 쪽에서 먼저 전화를 걸어서 - 왜 내 번호를 아직 안 지웠는지는 모르겠지만 -
다시 대화와 데이트를 시도했다. 대화는 했지만 데이트는 거절했다.
문자로만 말을 주고 받는게 전부였다.
본인이 외로울 때만 내가 필요했단 티를 오지게 내고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언젠가 한 번 말다툼을 했다.
곁에 있을 때는 한 번도 안 싸웠는데 왜 헤어지고 나서? 이해할 수 없다.